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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忍耐)

<시험에 견디어 낸 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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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시는 하나님_이사무엘 목사

02-26

돌아오시는 하나님(사무엘상 6:1-12)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참패했다. 법궤를 빼앗긴다. 블레셋은 빼앗아간 법궤를 다곤 신전에 둔다. 전쟁에서 패배한 여호와가 다곤 신에게 항복하고 종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다곤 신상의 얼굴이 땅에 닿은 상태로 법궤 앞에 엎드러져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깜짝 놀라 신상을 일으켜 세운다. 그런데 이튿날 또 엎드러져 있다. 이번에는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떨어진 채로. 하나님 앞에서 도망가다가 문지방을 못 넘고 살해당해 쓰러진 무기력한 다곤인 셈이다. 


이제, 본격적인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된다. 다곤의 손(4절)은 잘려 나갔는데, 여호와의 손(6절)은 강하게 역사하셨다. 독한 종기 재앙으로 아스돗, 가드, 에그론 등 블레셋의 도시들을 치셨다. 결국, 블레셋은 법궤를 이스라엘로 보내기로 결정한다. 하나님이 블레셋 진영에서 홀로 싸워 승리하신 것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약해서 전쟁에서 패한 것이 아님이 입증되었다. 하나님이 잠깐 져 주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계획 때문이다. 그들의 마음을 가난하게 만드시기 위한 일시적 조치였다. 이처럼 우리 삶에 해결되지 않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다. 실패와 고난이 찾아온다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힘들고 어려울 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렇듯, 전능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승리의 영광을 홀로 누리실 수 있는 분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로 돌아오고자 하신다. 자기 백성과 함께 승리를 맛보기 원하셨기 때문이다. 떠나 있어도 언제나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을 향해 있었다. 백성들은 아직 회개하지 않은 상태다. 그래도 하나님의 마음은 한결같다. 마치 자녀를 향한 부모의 마음처럼. 벧세메스로 가는 송아지의 눈물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법궤. 이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이야기다. 우리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돌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자격이 있어서 하나님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이 아니다. 조건 없이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찾아오신다. 홀로 싸우실 수 있고, 홀로 승리하실 수 있지만, 그러지 않으신다. 우리와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하신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잠시 떠나실 때가 있지만, 곧 다시 돌아오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향한 사랑과 그 강한 애착 때문에.  


모든 고등종교는 인간 편에서 절대자에게 가는 시스템이다. 그것이 신이든, 진리든. 인간의 고행과 수행을 통해서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한다.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정점에서 절대자를 만난다. 하지만, 기독교는 반대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오신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신다. 인간이 어떤 자격과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은혜가 찾아온다(롬 5:8).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무조건적 사랑 unconditional love’ 이라고 한다. 우리의 상태가 좀 나아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꽤 괜찮아졌기에 주님이 찾아오시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허물 많은 죄인이지만,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고 낮고 낮은 이 땅 가운데, 십자가에서 죽기 위해 달려오신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시다. - 이사무엘 목사


요한일서 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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