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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이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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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카메오 출연

07-16

뜻밖의 카메오 출연 (삼상 23:15-29)


다윗은 여전히 어려움과 고난 중에 있다. 사울은 다윗을 ‘매일’ 찾고 있다(14절). 하루 이틀이 아니다. 벌써 수년째다.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불안감 때문에 한순간도 편히 쉴 수 없는 상태다. 이번에도 사울이 군사들을 이끌고 다윗의 생명을 찾으러 또 나왔다(15절). 그런데, 사울의 군대에서 한 명이 몰래 빠져 나온다. 다윗 일행을 어떻게 찾았는지 숨어 있는 수풀 쪽으로 걸어온다. 그의 얼굴이 낯이 익다. 다름 아닌 사울의 아들, 다윗의 절친, 요나단이다. 여기서 요나단을 만나게 될 줄이야. 마치, 뜻밖의 카메오가 출연한 듯 하다. 

“다윗, 너에게 꼭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두려워하지 말아. 내 아버지의 손이 네게 결코 미치지 못할 거야. 너는 반드시 왕이 될거야. 그리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거야.” 

요나단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다윗에게 이 말을 꼭 해야 했다. 어려움에 빠져 낙심해 있던 다윗에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사실, 요나단이 차기 왕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요나단의 격려를 통해 낙심해 있던 다윗은 다시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된다(16절). 고단한 현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진 않지만 살아계셔서 자신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낙심한 자를 위로해 주기 위해 이렇게 뜻밖의 카메오 같은 사람을 보내주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요나단이 나올 줄 누가 예상했겠나? 하나님은 오늘도 거칠고 험한 세상에서 두려워 고개를 떨구려 하는 우리에게 예상치 못했던 도움의 손길과 만남을 허락해 주신다. 


구약의 요나단은 신약의 예수님을 예표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에 빠져 소망이 없던 우리를 위해 찾아오신 진정한 카메오시다.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이 땅으로 내려오실 줄 누가 알았겠나? 이 세상의 어떤 신도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피조물을 위해 직접 찾아 오는 경우는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은 사울의 광기로 가득한 거친 광야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셨다. 냄새나고 습한 구유에서 태어나셨다. 목자도 놀라고, 천사도 놀랐다. 30년을 우리와 똑같이 삶의 질고를 다 겪으며 사셨다. 그리고, 때가 되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고, 죽으셨다. 화려하고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 메시아를 기대했던 유대인들은 납득을 못했다. 모두의 예상을 빗나간 모습이었다. 저주 받은 자처럼 나무에 달려 죽으셨기에 조롱했다. 고대 헬라인들 역시 십자가를 통한 구원의 방식은 미련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절대자인 신이 인간을 위해 죽을 수가 있냐는 것이다.

 

(고전 1:23-24)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지만, 예수님은 그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치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했던 것처럼.

 

“내가 너를 위해 죽으러 왔다. 내가 너의 발을 씻기기 위해 섬기러 왔다.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 너는 나에게 이만큼 소중한 존재이다. 너는 왕이다. 너는 제사장이다. 너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이 무너진 세상을 회복하고, 구원하고, 치유하기 위해 너를 사용하기 원한다. 힘을 내라. 현실은 어렵지만 나를 바라보면 새 힘을 얻을 것이다. 마음을 담대히 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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