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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06:1)

L목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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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길 점검하기

12-24

믿음의 길 점검하기 (막 5:35-43)


1. 믿음의 시작

야이로가 예수님 발 아래 엎드렸다(22절). 그는 회당장이다. 존경받던 지역 유지다. 그런데, 아직 공인되지 못했던 젊은 랍비에게 엎드린다.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목수의 아들에게 순종하겠다는 뜻이다. 그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히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어린 딸이 죽을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23절). 시름시름 앓고 있는 열두 살짜리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자신의 지위와 자존심을 다 내려놓았다. 예수님의 구원을 바라고 무릎 꿇은 채 간절히 구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시작이다. 신앙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경험하는 고통과 인생의 역경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 인생의 비바람, 폭풍우가 아니었다면 우리도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옛날 청교도들은 고난을 가리켜 위장된 축복이라고 불렀다. 


2. 믿음의 과정

예수님께서 야이로의 부탁에 응하시고 그의 집으로 함께 가신다(24절). 딸이 나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그 길. 얼마나 기뻤을까. 그런데, 갑자기 믿음을 뒤흔드는 소리가 들린다. 딸이 죽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35절). 회당장의 마음은 무너졌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36절)” 아직 믿음을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현실은 참담하지만 믿음을 지키라는 의미다. 다행히 야이로는 예수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고 집을 향해 나아간다. 집 근처에 이르자 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고, 아이고” 사람들이 울며 심히 통곡한다. 딸의 장례가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야이로의 마음은 이제 갈갈이 찢어지기 직전이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는데, 이게 무슨 소용인가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확신에 찬 목소리로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39절)” 이에 사람들은 비웃는다(40절). 무슨 소리 하냐고, 이제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외친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신다. 영안을 열고 보면 죽은 것이 아니라, 자는 것이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울음소리와 비아냥거리는 소리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믿음의 길은 결코 쉽지 않다. 세상의 목소리와 예수님의 목소리 사이에서 우리는 항상 갈등하고 고민한다. 유혹의 소리, 불신의 소리, 부정적인 소리, 조롱하는 소리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한다. 


3. 믿음의 결국

이제 마지막 단계다. 예수님은 비웃던 사람들을 다 내보내신다(40절). 불신앙의 근원을 다 몰아내신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소리가 더이상 들리지 않는 방으로 들어가신다. 핵심 제자들(37절: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부모. 딱 5명만 데리고 고요한 은혜의 방으로 들어가신다. 예수님은 아이의 손을 잡으신다(41절). 원래 율법에 의하면 시체을 만지면 부정해 진다. 하지만, 그분은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따뜻한 사랑의 손으로 싸늘해진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신다. “달리다굼!” 소녀가 벌떡 일어난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 예수님의 말씀이 옳았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면 된다. 정말이었다. 왜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소리로 기적을 행치 않으셨을까? 이것이 신앙의 신비다. 놀라운 기적을 눈으로 직접 본 사람은 소수였다. 이것은 예수님과 동행한 다섯 명만이 누릴 수 있던 특권이었다. 집 밖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불신앙의 집단에게는 여전히 비밀로 감춰져 있다. 부활의 기적, 생명의 역사는 예수님과 함께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걷는 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하늘의 은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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