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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다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롬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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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는 뜻이 있다_이사무엘 목사

01-29

고통에는 뜻이 있다 (사무엘상 1:1-11)


한나.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여인이었다.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명문가 출신이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이름까지 소개된 뼈대 있는 집안이었다(1절). 게다가 부잣집에 믿음 좋은 가정이었다(2-3절). 한나는 그런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아내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한나에게는 남 모를 근심거리가 있었다. 자식이 없었다. 요즘은 이것이 허물이 될 수 없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3천 년 전에는 여인의 가장 큰 수치였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였지만 자신에게만 있는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던지, 그녀는 식음을 전폐했다(7절). 스스로를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15절)’고 고백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아픔이 있다. 다른 것은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내게 너무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그 무엇이 있다. 이 한 가지만 해결되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은데 도무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내 발목을 잡고 놔주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받는 심적 고통은 말할 수 없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한나의 불임’이 ‘하나님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은 반복해서 ‘하나님께서 한나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한다(5, 6절).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다 누리는 복을 믿음 좋고 착한 한나에게 안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나처럼 고통 속으로 몰고 가실 때가 있다. 그 때는 하나님이 심술궂은 영감님처럼 느껴진다. ‘하나님, 도대체 왜 내 삶에 이렇게 간섭하시나요? 다른 사람 모두가 평범하게 누리는 복 하나 못 받게 하시나요?’ 하고 한숨 섞인 원망을 토로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 고통 속에 하나님의 특별한 의도가 숨어 있다.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들이 다 누리는 일반적인 복을 안 주시는 이유는 ‘가장 위대한 복’을 주시기 위함 때문이다.   


이것을 한나가 알았다. 그래서, 갑자기 일어난다. 히브리어로 일어난다는 단어 ‘쿰’은 단순히 신체적인 묘사를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무언가 중요한 결정을 했다는 뜻이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해결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문제는 오직 하나님만 풀어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아무리 남편이 잘해줘도, 아무리 환경이 좋고, 돈이 많아도 열리지 않던 문의 열쇠를 찾은 것이다. 한나는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기도라는 것을 자주 망각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힘으로 이리저리 뛰는 것은 마치 소총을 쏘는 것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마치 대포로 공격하는 것과 같다. 적이 새카맣게 몰려올 때 소총만으로는 안 된다. 하나님께 지원요청을 하면 잠시 후 하늘에서 수많은 폭탄이 떨어지며 적을 물리치게 될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나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어두운 시대를 밝힐 ‘사무엘’을 선물로 주신다. 한나는 소중한 그 아들을 다시 하나님께 드린다. 암울한 사사시대가 종식되고 영광스러운 왕정시대를 시작하기 위해 헌신된 한 사람이 필요했다. 한나는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 시대의 필요를 알았다. 그래서, 기도로 얻은 아들을 다시 드린 것이다. 하나님은 그 사무엘을 통해서 시대를 바꾸셨다. 하나님은 이렇게 작은 기도를 통해 언제나 일하셨다. 고통에는 뜻이 있다. 우리에게 있는 고통을 부여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일하실 것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 주실 것이다. 

 

- 이사무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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