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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만을 사랑하라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100:4)

L목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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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의 자리가 승리의 자리로

03-06

패배의 자리가 승리의 자리로 (사무엘상 7:1-12)


에벤에셀. ‘하나님이 여기까지 우리를 인도하셨다'는 뜻이다. 승리의 자리를 상징하는 지명이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실패의 자리였다(삼상 4:1). 블레셋에게 처참하게 졌던 아픔의 장소였다. 실패의 자리가 어떻게 승리의 자리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방법을 안다면 우리 역시 실패의 자리에서 승리의 자리로 옮겨갈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하나님을 사모할 때 패배의 자리는 승리의 자리로 바뀔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번의 큰 패배를 경험했다. 법궤가 돌아왔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지도 못하고 있다. 20년 동안 외적인 환란, 영적인 기근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그 아픔의 시간을 통해 이스라엘 온 족속은 여호와를 사모하게 된다(2절). 우리 삶에 언제 참된 승리가 찾아오는가? 실패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바라볼 때다. 어느 곳에서도 소망을 찾지 못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숙한 곳에서 깨닫게 될 때다. 그때서야 우리는 하나님께 고개를 돌리기 시작한다. 그분을 사모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실패의 흔적들은 오히려 성공의 단초가 된다. 


둘째, 우상을 버릴 때 우리는 패배의 자리에서 승리의 자리로 옮겨갈 수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다른 신을 겸하여 섬기고 있었다. 영적 회색 지대에서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만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고 호소했다(2절).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부부사이의 사랑의 관계로 비유하곤 한다. 남편은 아내만 사랑해야 한다. 아내는 남편만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100이면 100을 다 줘야 하고, 받아야 한다. 이 사람에게 50, 저 사람에게 50을 나눠줄 수 없다. 그래서, 사랑은 독점적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곁눈질 하는 것을 싫어 하신다. 이것이 인격적인 사랑의 특징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주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기까지 그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다. 우리 역시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사랑해야 한다. 그때 진정한 승리가 시작된다. 


셋째,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실 때 우리는 영원한 승리를 경험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승리는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계속 이어졌다.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다. 사무엘은 선지자, 제사장, 사사 3중직을 감당했던 독특한 인물이다. 그는 신약에서 3중직을 감당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사무엘 때문에 이스라엘이 승리했듯, 예수님 때문에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 사무엘이 쉬지 말고 부르짖고 기도했듯(7절) 예수님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 사무엘이 어린 양으로 번제를 드렸듯(9절)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어린 양이 되어 제물로 죽으셨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승리했다(15절)는 말은 그가 결국에는 죽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은 영원히 사셔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따라서, 부활의 첫열매 되시는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신다면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이 내 삶을 다스리기 시작하실 때 우리 삶의 에벤에셀은 더 이상 실패의 자리, 치욕의 자리가 아니라 승리의 자리, 성공의 자리로 변할 것이다.  - 이사무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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