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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忍耐)

<시험에 견디어 낸 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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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에서 만족으로

02-24

결핍에서 만족으로 (시편 23:1-6)


1. 나는 양이다


우리는 보통 양이라고 할 때 착하고 예쁘고 귀엽고 순한 이미지를 생각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지역에서 ‘당신은 정말 양 같다'는 말은 심한 모욕이다. 양은 온순해 보이지만 고집이 굉장히 세다. 게다가 우둔한 동물이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은 자기가 갔던 길을 기억하고 집을 찾아오지만, 양은 똑같은 길을 수 없이 왕래해도 혼자 내버려두면 길을 잃어버린다. 양은 시력도 나쁘다. 10미터 앞을 제대로 못 본다. 방향 감각도 없다. 앞선 양을 따라가다 절벽에 떨어져 죽기도 한다. 가시밭이 앞에 있어도 그걸 못 보고 가다가 찔린다. 양은 우리랑 닮았다. 우리는 종종 내가 가는 길이 좋은 길인지 나쁜 길인지 분별을 못한다. 한치 앞의 위험도 모른다. 그런데도 고집은 엄청 세다. 이 길이 멸망의 길임에도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이 좋다고 가니 진짜 좋은 길인 줄 착각하고 고집 부리며 간다. 


2. 목자가 인도한다


팔레스타인의 목자는 풀밭을 미리 찾기 위해 사전답사를 해야 한다. 푸른 풀밭 뿐만 아니라 신선한 물도 구해야 한다. 양은 겁이 많아 흐르는 물을 마시지 못한다. 물에 빠질까봐 겁을 낸다. ‘쉴만한' 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조용한' 이라는 뜻이다. 영어성경에도 “quiet waters” 라고 번역했다. 쉴만한 물가는 목자가 양떼를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물 웅덩이를 말한다. 우물에서 물을 퍼 오거나 흐르는 물을 돌로 막아야 한다. 얼마나 수고로운가. 하지만, 목자는 이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야, 양이 편안하게 먹고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 목자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양을 인도하기도 한다. 여름이 되어 풀이 마르면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거기에 풀이 있다. 가는 길이 거칠다. 그래도 가야 한다. 신기한 것은 이때 양의 몸이 튼튼해 진다. 양과 목자 사이도 돈독해 진다.  


3. 목자가 보호한다


양은 참 약한 동물이다.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발톱도 없다. 뿔도 없다. 다른 초식동물들처럼 빨리 도망갈 재주도 없다. 그래서, 맹수가 쫓아오면 십중팔구 잡아 먹힌다. 하지만, 걱정이 없다. 목자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목자의 손에는 지팡이와 막대기가 있다. 목자가 목숨 걸고 사나운 이리떼들을 쫓아낸다. 목자의 철저한 보호와 보살핌 속에서 양은 결국 산 위에 있는 푸른 풀밭에 도착한다. 구릉 지대에 있는 풀밭이 마치 잔칫상처럼 풍성하게 차려져 있다. 골짜기를 지나는 동안 이곳 저곳에 상처가 났지만 목자는 기름을 발라 정성껏 치료해 준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의 철저한 인도와 보호가 평생 계속될 것이라 확신한다. 이것은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요 10:11-12 )


선한목자는 삯꾼과 대조된다. 삯꾼은 돈을 받고 고용된 목자다. 삯꾼은 위협을 느낄 때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쉽게 포기한다. 그는 선하지도 않고, 양을 사랑하지도 않는다. 그저 돈 벌기 위해 양을 잠시 돌보는 것 뿐이다. 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릴 수 있다. 양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삯꾼에게 양은 수단이지만 목자에게 양은 목적 자체다. 세상은 삯꾼 시스템이다. 우리를 수단으로 본다. 이익을 가져올 때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해 준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우리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은 기본적으로 매정하다. 맹수를 만나면 네가 알아서 잘 도망가야 한다고 말한다. 상처가 나면 네가 알아서 치료하라고 말한다. “네가 똑똑하고 잘나야 해.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는 네 스스로 잘 찾아가야해. 그래서, 더 좋은 학벌이 필요하고,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해. 그것이 너를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할거야” 라고 위협한다. 문제는 우리가 연약한 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목자가 필요하다. 그것도 선한 목자가. 선한 목자를 만나기 전까지 늘 불안해 한다. 결핍을 느낀다. 하지만, 선한 목자가 만날 때 두려움이 사라진다.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라고 말하게 된다.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를 더 이상 내가 찾아다닐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를 삼키려 하는 들짐승들이 더이상 무섭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양 같은 우리를 위해 선한 목자가 되셨다. 그 약속을 증명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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