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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이김

여호와여 주는 나의 방패시요 나의 영광이시요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시3:3)

L목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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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모른다

10-05

우리는 하나님을 너무 모른다 (호세아 6:1-3)


우리는 직접 겪어 보지 않고 어떤 사람에 대해 미리 판단할 때가 있다. 선입견이라 말하기도 하고 편견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사람은 이럴꺼야’ 예상한다.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다. 하지만, 직접 만나 그와 깊이 대화를 나누고 함께 생활하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진면목을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호 4:6)”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 때문이었다. 그래서, 호세아 선지자는 외친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3절)” 우리가 알아야 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 나를 사랑하셔서 때로 징계하시는 분이시다. 

- 나를 사랑하셔서 상처를 도로 낫게 하고 싸매어 주시는 분이시다. 

- 나를 사랑하셔서 어떤 방법이라도 동원하여 그 분 앞에서 살게 하시는 분이시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알려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치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았다(4절). 하나님에 대한 무지는 그분을 향한 배반과 배신으로 이어졌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앗수르, 남유다는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했다. 구약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때로 징계, 때로 회복)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을 끝까지 외면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분이신지 제대로 알려주시기로 작정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이 나타나셨다(3절). 밤이 아무리 깊어도, 새벽이 오면 어둠은 자연스레 물러가듯 그분의 빛을 이길 어둠은 없다. 인간의 극악한 죄악과 고집불통 같은 불신실함의 어둠이 십자가의 사랑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 사랑은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임했다(3절). 팔레스타인에는 10월부터 2월까지 겨울 비가 내린다. 이때가 우기다. 이 기간 동안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짓는다. 그리고, 한동안 비가 내리지 않다가 3월과 4월에 ‘늦은 비’가 내린다. 그 다음부터 건기가 계속된다. 추수하기 직전에 내리는 이 비가 그래서 정말 중요하다. 늦은 비가 내려야 곡식이 마지막 힘을 내어 열매를 맺는다. 늦은 비가 없으면 이때까지 땀 흘리며 수고한 열매를 전혀 거두지 못한다. 꼭 필요할 때 내리는 마지막 비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마지막 은혜를 뜻한다. 절망적인 우리 인생에도 이 은혜가 필요하다. 이번이 아니면 안 되는 순간. 이때가 아니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상황. 성경이 말하는 늦은 비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어두운 시대의 소망, 저주로 가득찬 세상의 마지막 은혜. 예수가 아니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고 그 분을 찢으셨다. 십자가에서. 이유는 단 하나. 우리를 낫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아들을 치셨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왜? 우리를 싸매어 주시기 위해. 그리고, 셋째 날(2절)에 그분을 무덤에서 일으키셨다. 그리고, 예수의 부활을 믿는 우리 모두는 영원한 생명의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다. 인생의 끝, 절망의 낭떠러지 가운데 주어진 늦은 비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게 되었다. 이스라엘에게 이 메시지를 전한 선지자 ‘호세아’의 히브리어 이름은 신약에서 ‘예수’로 번역된다. 그 예수께서 오늘날 우리에게 호소하신다. 나를 힘써 알라!  


에베소서 3:18-19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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