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인내(忍耐)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눅18:7)

다음세대 소통

> 살아가요 > 다음세대 소통

[초등부] 가난한 사람이 정말 복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08-28

30c1e107ca165e34e2cffb9e9b0ebbaa.jpg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태복음 5:3)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누가복음 6:20)


예수님은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는 추가적인 설명을 위해 "심령", "마음"을 추가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가난한 자"는 우리가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게 맞습니다. 

왜 마태가 "심령"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는지는 잠시 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이 우리가 생각하는 궁핍함을 의미한다면, 그것이 왜 복이 될까요?

우리 중 그 누구도 가난을 목표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난을 부러움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죠. 

그래서 우리는 "성경은 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원어 사전에서 "가난"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의미가 있습니다. 사전의 의미를 쉽게 각색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나의 손을 거칠게 밀어 넣는 상태"


그리고 "거칠게 밀어 넣는다"는 것은 마치 로켓이 대기권과 성층권을 뚫고 우주로 올라가는 강력한 추진력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로켓과 같은 강력한 추진력을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을 적극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했고, 어디에 도움을 요청할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들은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적극적으로 나아가, 그것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이 복이 된다는 것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다시 한번 더 정리해볼까요. 성경이 말하는 가난은 하나님만을 철저히 의지하는 겸손한 마음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마태는 누가와 달리 "심령"이라는 설명을 덧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태가 바로 가난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복"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100평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를 타는 것도 아닙니다(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이 말하는 "복"은 가난하기에, 겸손하기에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는 마음과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는 본래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그분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야 말로 복이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 겸손한 마음으로 오늘도 무릎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 나의 손을 거칠게 밀어 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는 상태인 복을 누리며 오늘 하루를 살아갑시다. 


사랑합니다.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