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고후1:10)

L목사와 함께

> 소개해요 > L목사와 함께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라

11-12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오라 (누가복음 5:12-13)


이스라엘 땅에 살던 나병환자는 레위기 13장에 근거해 사회적, 종교적으로 철저하게 격리되었다. 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지내야 했다. 평생을 마을 밖에서만 살아야 했다. 마을 안으로 혹시 들어올 일이 있으면 “부정하다” 라고 두 번 크게 소리쳐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아야 했다. 율법은 부정한 자들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부정하게 된다고 규정하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가. 스스로 부정한 존재임을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 불쌍한 처지다. 


어느 날 나병환자가 예수님께서 한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용기를 가지고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예수님의 동선을 살폈다. 분명 “부정하다”를 크게 두 번 외쳐야 했다. 그런데, 외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쫓겨날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슨한 틈을 이용해 예수님께 달려왔다. 절박한 마음으로 바짝 엎드렸다. 그리고, 외쳤다.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의 요청이 이상하다. “나를 깨끗하게 해 주소서”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부탁하지 않았다. 이유가 있다. 예수님이 거부하실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너는 부정하고 더럽다. 그래서, 나는 너를 거부한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다. 그래서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의도를 먼저 물었던 것이다. ‘과연 주님은 나 같이 부정한 자를 외면하지 않으실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만약, 예수님이 거절하신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왜? 그는 부정한 자가 맞으니까. 스스로 그렇게 외치고 다녔으니까. 나병환자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응답을 기다렸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인가? 예수님께서 그를 부정한 자라는 이유로 거부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용납하신다는 뜻이다. 얼마나 기뻤을까? 게다가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다. 충분히 말씀만으로 고치실 수 있지만, 직접 환부를 만지시며 치유하셨다.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다니! 주변의 사람들도 놀랐겠지만, 당사자는 더 놀랐을 것이다.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 가운데 쌓여 있던 마음의 병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 걸림돌이 있다. ‘주님이 내 삶의 문제를 과연 고쳐주실 수 있을까?’라는 의심보다 더 큰 걸림돌이다. ‘나 같이 부정하고, 부끄럽고, 연약하고, 거룩하지 못한 자를 주님께서 과연 받아주실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 상태를 잘 아는 사탄이 잘 안다. 그래서, 우리 마음을 수시로 공격하고 참소하고 정죄한다. “너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받아주실 것 같아? 너 왜 그렇게 뻔뻔하니? 지금 보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나와야 하지 않겠니?”라고 비난한다. 그때, 우리는 히브리서 10:19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믿음은 무엇인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십자가의 공로를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나병환자처럼 담력을 가지고 겸손히 주님 앞에 엎드리는 순간, 치유와 회복은 시작된다. 


이 글을 페이스북으로 퍼가기 이 글을 트위터로 퍼가기 이 글을 카카오스토리로 퍼가기 이 글을 밴드로 퍼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