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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1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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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삶

03-10

기도하는 삶(마태복음 6:5-9)


기도의 중요성에 대해 모르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모두 기도가 필요하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실제로 기도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 다시 고민하게 된다.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는가?


1. 앎이 아니라 삶


기도는 왜 해야 하나. 앎이 아니라 삶을 위해서다. 우리는 다짐한다. “주님을 위해 살아야지, 주님 뜻대로 살아야지” 그런데, 결단한 대로 사는 것이 만만치 않다. 내가 동의한다고, 다짐한다고 그렇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가슴까지 30cm 라고 한다. 앎이 삶으로까지 연결되기 어려워 그렇다. 그렇다면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우나. 한 가지 방법 뿐이다. 기도다. 기도하면 된다. 기도하면 앎이 삶으로 이어진다.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과 발로 이어진다.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시작된 주옥같은 산상수훈 말씀에 우리는 다 동의했다. 하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진리를 머리로만 알 뿐이다. 가슴으로 느끼고 삶으로 살아낼 수 없다. 반면에 기도하면 진리가 삶 속에서 구현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이 펼쳐진 마태복음 5,6,7장의 정중앙에서 기도에 대한 교훈을 가르쳐 주셨다.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내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기도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2. 일이 아니라 관계 


기도는 일이 아니라 관계가 본질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제요 사귐이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일로 여겼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하루에 세 번 기도했다. 그 세 번의 기회를 더 깊은 관계를 위한 통로로 사용하지 않고 숙제처럼 행했다. 기도 시간이 되었을 때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서 일부러 했다. 일 잘하고 인정받듯 기도를 잘 해내고(?) 자랑스러워했다. 기도 안 하면 숙제를 안 한 것처럼 뭔가 꺼림직하게 여겼다. 기도를 일처럼, 의무처럼, 업적처럼, 치적처럼 여길 때 본질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골방으로 들어가 은밀하게 기도하라” 골방은 소중한 손님을 접대하고 더 친밀하게 교제하기 위한 비밀 공간이다. 하나님 한 분만을 초대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 더 깊이 사귀고자 하는 사람과 단둘이 있고 싶다. 그와 친밀히 대화하면서 관계가 더 깊어지고, 사랑이 더 자라게 된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와 더 깊은 사귐의 자리에서 만나기 원하신다. 어서 골방에 들어와 더 깊이 교제하자 하신다. 


3. 내 뜻이 아니라 주 뜻


기도는 내 뜻이 아니라 주 뜻을 이루는 과정이다. 내 뜻을 이루려 하는 사람은 중언부언 기도한다. 말을 많이 하면 응답해 주실 것이라 오해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진실한 기도가 아니다. 인격적이고 정상적인 대화가 아니다. 이것은 흥정이고 거래다. 내가 하나님을 설득하는 행위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 시키는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기도 대상은 아버지시다. 그분은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이미 아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하나. 기도는 일이 아니라 관계라 했다. 아버지와 자녀의 마음이 기도를 통해 서로 연결된다. 기도하는 가운데 내 영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으로 충만케 된다. 그 순간 내 뜻보다 더 크신 주의 뜻을 헤아리게 된다. 결국 내 뜻을 기쁨으로 내려놓고 거룩하신 주의 뜻에 순종하고픈 마음으로 가득하게 된다. 이것이 신비로운 기도의 과정이다. 기도를 통해 부족한 내 뜻이 아닌 완전한 주 뜻을 이루는 삶이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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