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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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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05-26

눈을 열어 보게 하소서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몸에서 눈이 소중하다는 말입니다. 시력이 나쁘면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요. 눈이 나빠 안경을 쓰는 사람이라면 겨울에 버스를 타거나 상점에 들어갈 때 안경이 뿌옇게 흐려져 고생한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 텔레비전을 가까이서 볼 때마다 멀리 떨어지라고 하시던 부모님의 걱정 어린 잔소리가 기억 납니다. 한 번 나빠진 시력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니 노심초사 하실 만도 하지요. 요즘에는 시력을 개선하는 여러 수술 방법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 나빠진 시력이 자연적으로 좋아지는 일은 거의 없으니 평소에 눈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성경은 신체적인 시력 외에 또 다른 시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그것은 영적인 시력입니다. 성경의 관심은 언제나 영적인 시력에 있습니다. 영적인 시력이란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영안(靈眼)을 의미합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영적인 시력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이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 즉,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눈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강조하는 모든 사람의 영적인 현주소입니다. 그러나 영적 시력을 잃은 자가 고침 받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안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성령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셔서 눈을 뜨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믿기 전 교회를 핍박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달려갔습니다. 가는 길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납니다. 삼일 동안 앞을 보지 못한 채 식음을 전폐합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아나니아의 안수를 통해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겨져 다시 보게 됩니다. 그렇게 바울은 죄로 인해 상실했던 영적 시력을 예수님의 빛 아래에서 회복하게 됩니다. 그때 복음의 놀라운 비밀을 깨닫게 됩니다. 영안을 온전히 회복한 바울은 새롭고 위대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꿩은 닭과 달리 잘 날아 다닐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육장 안에 있는 꿩은 닭처럼 날지 못합니다. 낮은 울타리를 뛰어넘을 수 없습니다. 그저 닭처럼 땅만 보고 사람이 주는 모이만 먹을 뿐입니다. 날 수 있는데 왜 날지 않을까요? 사육하는 사람이 꿩 눈 앞에 작은 안경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눈가리개 때문에 하늘을 못 보게 만들어서 그렇습니다. 꿩은 하늘이 안 보이니 하늘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날아 오를 생각조차 못하는 것입니다. 위를 못 보고 아래만 보이니 그저 땅에 떨어진 먹이에 모든 관심을 쏟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인 눈이 가려져 있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 하늘에서 공급되는 무한한 능력을 힘 입어 살 수도 없습니다. 이땅이 전부인양 살아갑니다.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혹시 눈이 가려진 꿩처럼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봅시다.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어느새 어두워진 우리의 영적 시력을 밝혀 달라고 기도합시다. 사랑합니다. 


[엡1:18-19]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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