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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忍耐)

<시험에 견디어 낸 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약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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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할 때에

06-03

금식할 때에 (마태복음 6:16-18)


예수님은 구제, 기도, 금식을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행하라 부탁하셨다(2,5,16절). 기도와 구제에 비해 금식은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하기도 힘들고, 잘 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필요하고 중요한 금식. 왜 해야 하는가. 


첫째, 살기 위해 금식한다. 우리는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때로 먹는 것을 멈춰야 할 때도 있다. 금식해야 살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먹어야 힘이 나는데, 안 먹는다는 것은 내 힘은 하나님 뿐이라고 고백하는 행위다. 먹어야 사는데, 나를 살리실 분은 하나님 뿐이라고 몸으로 기도하는 것이 금식이다. 하루만 금식해도 인간이, 내가 이렇게 무기력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주님, 제가 이렇게 약하고 부족한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히, 철저히 낮아지겠습니다.” 금식할 때 겸손해 진다. 간절해 진다.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좇아 나를 구원하소서(시 109:24, 26)” 가난한 영혼에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금식을 통해 우리 영혼이 다시 살아난다. 막힌 것이 뚫리고, 닫힌 것이 열리고, 묶인 것이 풀린다. 


둘째, 사명을 위해 금식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다.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금식 한다. 예수님도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에 40일 동안 금식하셨다. 예수님은 사명은 금식으로 시작하여 십자가로 마무리 하셨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고 금식했다. 페르시아의 고위 공직자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지만 사명을 위해 달려갔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 고백하며 민족을 위한 사명을 감당했다. 쉽지 않은 그 일을 위해 사람들에게 금식을 부탁했고 자신도 금식했다. 안디옥 교회는 지도자였던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하라는 성령의 음성에 순종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온 교회가 금식했기에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사명은 보통의 기도로는 감당할 수 없다. 금식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용기와 힘을 주신다.  지혜와 능력을 주신다. 


셋째,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금식한다. 예수님은 사람 앞에서 행하는 금식에 대해 경고하셨다. 이것은 자기 만족을 위한 이기적 금식이다.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안 먹는 행위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된 삶이어야 한다. 나의 욕망을 제어하고 곤고한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다. 참된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준다. 멍에의 줄을 끊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한다. 주린 자에게 양식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보듬어 안는다. 자신을 희생하고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금식의 삶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이신 바로 그 모습이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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