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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사랑하심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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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하지 말라

06-24

비판하지 말라(마태복음 7:1-12) 


예수님은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이 말씀을 오해하면 안 된다. 부도덕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모른척 넘어가거나 적당히 타협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유부단하게 불의와 손 잡으라는 말도 아니다. 개인과 사회와 공동체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예수님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는 것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그 티를 빼야 한다고 말씀하셨다(3-5절). 타인의 잘못과 허물을 고치고 개선시키는 것,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런데, 방법이 문제다. ‘비판’이라는 방법은 안 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내가 비판하는 그 비판의 기준에 내가 걸리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고치고 바꾸려고 비판했는데, 결국 나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어 그 사람도 못 고치고 나도 상처를 받아 넘어지게 된다. 나의 비판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내 삶을 무너뜨린다. 일단, 내가 살아야 한다. 그래야 남도 살린다. 내가 살아야 남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비판해서는 안 된다. 내가 살기 위해서라도.


둘째,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비판의 헬라어 ‘크리노’는 법정에서 재판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의 행위를 판단할 때, 내가 재판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내가 정말 공정하게 재판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인간은 편견과 선입견으로 뒤덮힌 모순덩어리다. 모두가 죄인이다. 예외가 없다. 치우치지 않고 공의롭게 재판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뿐이시다. 그 분만이 의로우신 재판장이시다(시 7:11, 딤후 4:8). 그래서 예수님은 우선, 남의 눈의 티를 빼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먼저 빼라고 경고하신다(3절). 먼저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회개하고 내 삶을 개혁한 뒤에 타인의 약함을 개선시킬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은 ‘외식하는 자’(5절)다. 


셋째, 그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 타인의 마음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을 때 행하는 비판은 백해무익하다. 비판을 수용할 수 있는 지혜가 없으면 미움과 다툼의 씨앗이 될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하신다(6절).                                                     


사람을 바꾸려면, 공동체를 새롭게 하려면, 병든 세상을 고치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예수님의 방법 밖에 없다. 예수님은 비판의 말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구약의 계명인 율법에 의하면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아야 할 존재가 우리다. 하지만, 예수님은 새 계명인 사랑의 법으로 우리를 용서하셨다. 예수님은 티 하나 없는 분이지만, 우리 대신 십자가라는 들보를 지고 비판 받아 죽으셨다. 그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변화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남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한다(12절). 비판이 아니라 사랑으로. 더 풍성한 사랑으로 대접하고 섬기기 위해 우리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7-10절). 하늘 아버지께서 주시는 좋은 것으로 나누고 베풀 때(11절) 그는 나처럼 변화될 것이다. 그때 세상은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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